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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chi 시내 관광
유대인 마을의 빠르데쉬 시나고그 Paradesi Synagogue

Paradesi Synagogue는 인도 코치 (Kochi)의 매우 중요한 유적 중 하나다. 이것은 인도 하이데라바드(Hyderabad)의 유대인들이 1568년에 건립한 회당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교 회당 중 하나다.
이 회당은 이름 그대로 외국인 회당(Paradesi Synagogue)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기원전 70년에 바벨론에서 유대인들이 처음으로 이민한 이래 인도의 유대인들이 모여 거주하고 있던 지역에서 건립되었다.
Paradesi Synagogue는 건물 전체가 아름다운 청색과 황금색 장식으로 꾸며져 있으며, 소중한 유대교 관련 유물이나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회당은 또한 인도 유대인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중요한 증거이며, 많은 관광객들이 인도를 방문할 때 반드시 방문하는 장소 중 하나다.
인도에 건설된 최초의 성당 성 프란시스교회 St. Francis Church

원래 1503년에 지어진 코치의 포트 코치(Fort Cochin) 에 있는 성 프란시스교회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럽 교회 중 하나다.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한 바스코 다 가마는 1498년 코지 코데(캘리컷) 근처의 카파드에 상륙 했다. 그들은 Raja of Cochin의 허가를 받아 Fort Kochi 해변에 Fort Emmanuel(현재 Fort Kochi)을 건설했다. 요새 안에 그들은 성 바돌로매에게 바쳐진 목조 구조의 교회를 세웠다. 1506년에 포르투갈의 총독인 코친의 라자(Raja of Cochin) 프란시스코 데 알메이다는 석조로 목조 건물을 재건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는 1524년 인도를 세 번째로 방문했을 때 코치에서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원래 이 교회에 묻혔지만 14년 후 그의 유해는 리스본으로 옮겨졌다.
독특한 장관의 중국식 어망

중국 어망은 고치 고유의 것으로, 중국 밖에서는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다.
말라얄람어로 체나발라라고 불리는데, 아마도 중국의 탐험가 정허에 의해 소개되었을 것이다.
이 어망은 서기 1350년에서 1450년 사이에 고치 해안에 설치되었다. 중국 광동성에서 사용되던 방식이라고 한다.
거대한 그물을 나무에 고정시켜서 담갔다가 들어올리는 단순한 방식이다.
지금은 효율성이 낮아 실재로 사용되는 것보다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Kodungallur는 고대에는 '무지리스(Muziris)' 또는 '크랑가노르(Cranganore)'로 불렸던 고대 인도의 가장 큰 무역 중심지, 국제적인 항구 도시 중 하나였다. 이 곳은 검은 황금(black gold)이라고도 알려진 후추를 중심으로 한 향신료의 무역항으로 번성했다. 유대인과 그리스 상인들이 이곳에 와서 후추, 생강, 계피(cinnamon), 카르다몬(cardamom), 티크(teak), 자단(resewood), 백단향(sandalwood), 공작새 깃털, 상아, 진주 등을 교역하고, 심지어 식민지를 건설하고 정착하기도 했다. 사도 도마가 자기와 같은 언어, 문화, 전통을 가진 유대인들 사이에서 그의 초기 선교를 시작하는 것은 쉬웠다.
Kodungallur는 서기 52년, 사도 도마가 인도 땅에 최초로 도달해 발을 디딘 기념비적인 장소다.
Maliankara는 사도 도마가 세운 최초의 교회다. 역사가 William Logan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이미 그곳에 정착했으며, 기독교로 개종한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당시 이곳에는 로마, 이집트, 페르시아에서 온 상인들과 유대인 정착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현재 이곳의 성 도마 대성당(Pontifical Shrine)에는 이탈리아 오르토나에서 봉헌되어 돌아온 사도 도마의 실제 오른손 뼈(유해)가 안치되어 있어, 전 세계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도마행전》 제1장과 2장은 사도 도마가 인도 땅(크랑가노르 항구)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순간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한다.
도마가 항구에 내렸을 때, 마침 그 지역 왕(안드라파 공 카라시 왕)의 외동딸 결혼 잔치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었다. 외국인 상인 합반(Habban)과 함께 얼떨결에 잔치에 참석하게 된 도마는 연회장 한구석에 조용히 앉아 음식을 먹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만 하고 있었다. 이때 유대인 출신의 한 플루트 연주자 여성이 연회장을 돌며 연주를 하다가 도마 앞에 멈추어 섰다. 도마는 그녀를 보며 나지막이 히브리어로 천상의 언어와 복음의 찬가를 노래했다. 주위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했으나, 유대인 여인은 도마가 부르는 히브리 노래의 의미(참된 신부인 교회와 천상의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아듣고 눈물을 흘리며 플루트를 떨어뜨렸다. 그녀는 이 신비한 외국인이 하나님의 사도임을 직감하고 가장 먼저 도마의 제자가 되었다. 이 사건은 도마가 인도 땅에서 행한 '첫 번째 선교적 조우'이자 인도 복음화의 서막을 알린 상징적인 사건으로 전해진다.
Rabban Pattu는 사도 도마가 왕실의 일부 사람들에게 침례를 준 후 촐라(Chola)왕국과 더 나아가 중국으로 갔다고 말한다. 그는 Maliankara로 돌아와 그곳에서 1년 반 동안 일했고, 350명에게 기독교 신앙으로 세례를 베풀었다.
케랄라 교회는 Malankara로 알려져 있는데, Maliankara에서 기원했기 때문이다. 「께랄라교회의 역사(The History of Kerala)」를 저술한 K.P. Menon은 사도 도마가 이곳에 와서 기쁜 소식을 전하고 거룩한 십자가(Holy Cross)를 세웠다고 말한다.

이 교회는 서기 52년에 성 토마스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교회는 세인트 토마스가 상륙한 Kodungallur와 매우 가깝다. Kottakkavu라는 단어는 요새 안의 사원을 의미하는 kotta(Fort)와 Kavu(Temple)라는 두 말라얄람어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성 토마스는 성전 축제 기간에 이곳에 도착했다. 그는 기회를 이용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다. 원주민들은 이상한 믿음, 언어, 이방인 복장, 외모 등에 분노했다. 그들은 야단법석을 떨면서 사도 도마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 때 갑자기 폭풍을 일어나 그들에게 세차게 불었다. 사제를 포함하여 그들 모두는 무의식 상태에 빠졌다. 그들은 하나님이 개입하셨음을 깨닫고 사도에게 자기들을 용서하고 이 상황에서 구원해주도록 간청했다. 사도는 물을 떠서 축복을 한 다음 그들 위에 뿌리자 모든 것이 원래대로 평온해졌다. 그가 뿌렸던 거룩한 물의 일부는 공중에 떠 있었다. 그들은 사도의 신성(divinity)을 이해했고 그래서 그를 환영했다. 그들은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참 하나님께 기도할 교회를 지을 곳을 요청했다. 그는 그들에게 코끼리가 가져온 통나무를 내려놓는 장소를 달라고 요청했다. 코끼리는 통나무를 끌어다가 사원 근처에 내려놓았고, 사람들은 사도가 그곳에 그의 신을 위한 교회를 짓도록 허락했다.

팔라유르는 사도 도마가 세운 '7개 반 교회' 중에서도 영적 에너지가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성지다. 서기 52년 무렵 이곳은 힌두교 브라만(사제)들의 거대한 집성촌이자 중심지였다. 도마는 이 이교도 문화의 중심 한가운데에 복음의 씨앗을 뿌려 단숨에 기독교 거점으로 탈바꿈시켰다. 교회 내부에는 고대 브라만 사원의 흔적과 오랜 세월을 버틴 세례당 유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도마는 팔라유르에서 인도 최초의 세례를 집행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팔라유르는 “인도 기독교의 요람”이라 불린다.
사도 도마가 팔라유르에 도착했을 때, '탈리야쿨람(Thaliyakulam)'이라는 사원 연못에서 브라만 사제들이 물을 공중에 뿌리며 태양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뿌려진 물방울은 이내 중력에 의해 연못으로 다시 떨어졌다. 이를 본 도마가 다가가 "당신들의 신이 그 제물을 기쁘게 받았다면 왜 물방울이 다시 땅으로 떨어집니까? 내가 믿는 참 하나님께 기도하면 물방울이 하늘에 머무를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도마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연못 물을 공중에 던지자, 물방울들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그대로 멈춰 서서 빛나는 다이아몬드처럼 허공에 떠 있었다. 이 경이로운 기적을 목격한 브라만 사제들 대부분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세례를 받았다. 개종을 거부한 소수의 사제들은 이곳을 "저주받은 곳"이라 부르며 떠났고, 도마는 사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인도 최초의 온전한 교회 공동체를 세웠다.
도마는 팔라유르의 유대인 정착지인 ‘유단쿠누(Judankunnu, 유대인의 언덕)’에서 복음을 전했다. 이는 당시 팔라유르가 활발한 교역과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던 곳임을 보여준다.

코카망갈람 교회(Kokkamangalam Church)는 케랄라의 거대한 호수(Vembanand Lake) 연안에 위치한 아름다운 곳이다.
사도 도마가 52년경 인도에 도착해 약 1년간 머물며 1,600명을 개종시킨 것으로 전승되는 성지다.
도마가 코카망갈람을 떠난 후, 남겨진 성스러운 십자가를 시기한 이들이 이를 베반나드(Vembanand) 호수에 던져버렸다. 그러나 십자가는 가라앉지 않고 거대한 호수와 연결된 물길을 따라 스스로 헤엄치듯 떠내려가 '팔리푸람(Pallipuram)'이라는 마을 해안에 닿았다. 그곳 주민들이 빛나는 십자가를 건져 올려 교회를 세웠고, 이 소식을 들은 코카망갈람 신자들은 눈물로 회개하며 복음의 생명력이 물길을 타고 온 케랄라로 퍼져나갔음을 깨달았다.

콜람은 고대 인도양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향신료 수출로 유명한 항구 도시다. 사도 도마는 외교적·상업적 요충지인 이곳에 기독교 공동체의 기반을 다지고 십자가를 세웠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페르시아 기독교인들이 이주해 정착한 중심지이기도 하다.
콜람 교회(Kollam Church)는 사도 도마가 머물며 복음을 전한 일곱 교회(Ezharappallikal) 중 하나로 전승되며, 아라비아 해안의 주요 항구도시였던 콜람에서 1년간 체류하며 1,400명을 개종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교회는 해안 침식으로 파괴되었지만, 이후 페르시아에서 온 기독교인들이 테레사 교회를 세웠고, 이 교회도 해안 침식으로 사라졌다.
포르투갈 시대인 1503년 알부케르크(Albuquerque)가 도착했을 때, 콜람에는 2,000가구의 도마 기독교인 공동체가 존재했다.
현지 전승에 따르면, 사도 도마가 콜람 해안에 도착했을 때 거대한 통나무 하나가 바다를 떠돌며 항구를 가로막고 있었다. 왕과 수많은 군사들이 코끼리까지 동원해 이를 치우려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때 사도 도마가 다가가 "만약 이 나무를 치우면 나에게 교회를 지을 땅을 주겠느냐"고 왕에게 물었다. 왕이 수락하자, 도마는 자신의 허리띠(또는 성대)를 통나무에 묶어 가볍게 끌어당겨 해안으로 올렸다. 이에 감탄한 왕과 주민들이 세례를 받았고, 그 통나무를 사용해 콜람의 첫 교회를 지었다고 전해다.

닐라칼 교회(Nilakkal Church, 또는 Chayal Church)는 사도 도마가 인도에서 세운 일곱 교회(Ezharappallikal) 중 하나로 전승되며, 케랄라 내륙의 중요한 상업 중심지였던 곳에 자리잡은 성지다. 닐라칼은 마두라이(Madurai)와 티루넬벨리(Tirunelveli)와 교역하던 상업 도시로 교역로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도마는 다양한 상인들과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가졌다. 도마는 이곳에서 1년간 머물며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흔적이 숲 속에서 발견되었다.
《도마행전》에는 사도 도마가 '군다포러스(Gundaphorus)' 왕의 궁전을 지어주겠다고 해놓고, 그 돈을 모두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며 천상의 궁전을 지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닐라칼 전승은 이 맥락과 닿아 있다. 닐라칼은 지형상 야생동물(코끼리, 호랑이)과 도적들이 들끓는 험난한 요새였다. 도마는 이곳을 지나는 상인과 주민들에게 "땅의 요새는 무너지지만 하늘의 요새는 영원하다"며 영적인 보호를 선포했다. 숲속 척박한 땅에 교회를 세운 것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영혼을 지키는 '하늘의 요새'를 지은 도마행전식 선교의 실천이었다. 도마는 타밀 브라민, 벨랄라르(Vellalars), 체티아르(Chettiars) 등 일부 공동체를 개종시켰다는 기록이 있으며, 사도 도마가 54년경 이곳에 교회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는 람반 파투(Ramban Pattu)와 고대 금속판 기록에 언급되었다.
6세기 이후 도적들의 습격과 판디아 왕국 내 전쟁, 14세기 델리 술탄국의 침입으로 도시가 파괴되며 주민들이 칸지라팔리, 라니, 에루멜리 등지로 이주하여 도시가 쇠퇴하였다. 옛 교회는 폐허가 되었고, 1976년 정부가 부지를 제공하여 현재의 에큐메니컬 교회가 세워졌다. 다양한 교단이 함께 관리하는 세계 최초의 에큐메니컬 교회로 알려져 있다.

니라남 교회(Niranam Church)는 사도 도마가 53년에 세운 일곱 교회(Ezharappallikal) 중 하나로 전승되며, 케랄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성지 중 하나다. 도마는 이곳에서 많은 기적을 행했고, 교회는 이후 인도 정교회의 남부 본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도마는 니라남에서 많은 사람들을 세례 주었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을 사제로 임명하여 교회를 운영하게 하였다.
본래 도마는 니라남에서 조금 떨어진 '트리커팔레슈와람(Thrikkapaleswaram)'이라는 곳에 먼저 교회를 짓고 활동했다.
그러나 당시 그 지역의 힌두 브라만(사제) 세력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반대론자들은 도마가 세운 십자가를 뽑아 강물에 던져버렸는데, 신기하게도 십자가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 현재 니라남 교회가 있는 자리에 멈추어 섰다. 도마는 이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받아들이고 니라남에 단단한 기초를 세워 교회를 재건했다.
이 사건 이후 많은 브라만 가문(Pattamukkil, Kalyankal 등)이 감화되어 기독교로 개종하고 사제가 되었다.
도마행전에는 인도에서 행한 여러 기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니라남 전승과 연결되는 대표적 사건은 죽은 자의 부활, 악령을 쫓아낸 사건, 병자 치유 등이다.
영혼의 채움 뒤에 오는 육체의 안식 - 동양의 베니스, 알레피

알레피는 거대한 호수와 그물망처럼 얽힌 에메랄드빛 수로,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코코넛 나무가 장관을 이루는 평화로운 도시입니다. 시끄럽고 복잡한 인도의 도시 소음에서 완전히 벗어나, 잔잔한 물결 소리와 새소리만이 가득한 이곳은 순례길 위에서 얻은 영적 감동을 조용히 묵상하고 되새기기에 가장 좋은 치유의 공간입니다.
잔잔한 수로 위를 흐르는 안식, 하우스보트(보트호텔) 투어
알레피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케랄라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하우스보트(Kettuvallam)'에서의 하룻밤입니다. 과거 쌀을 나르던 전통 배를 고급스러운 침실과 화장실, 다이닝 룸을 갖춘 이동식 '보트호텔'로 개조한 것입니다.
물 위의 프라이빗 휴식: 순례단만의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창밖으로 흐르는 케랄라의 일상 풍경(빨래하는 여인들, 물놀이하는 아이들, 수로를 오가는 작은 배들)을 바라보며 완벽한 고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선상 위의 만찬: 하우스보트에는 전담 셰프가 함께 탑승합니다. 잔잔한 호수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며 현지에서 갓 잡은 싱싱한 생선 요리와 신선한 코코넛을 곁들인 전통 케랄라식 식사를 즐기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오렌지빛 일몰과 밤하늘: 해 질 무렵 호수 전체가 붉게 물드는 감동적인 일몰을 감상하고, 사방이 고요해진 밤에는 보트 위에 누워 쏟아지는 별을 보며 깊은 수면과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5,000년 역사의 치유 과학, 아유르베다(Ayurveda) 마사지
케랄라는 인도 전통 의학이자 대안 치료법인 '아유르베다'의 본고장입니다. 알레피의 아름다운 수로 풍경 속에서 받는 아유르베다 마사지는 단순한 스파를 넘어 영혼과 신체의 균형을 회복하는 치유의 과정입니다.
천연 약재와 오일의 조화: 여행객의 체질에 맞는 따뜻한 천연 허브 오일을 온몸에 바르고 진행되는 마사지는, 오랜 순례길로 굳어진 근육을 부드럽게 이완시키고 체내 독소를 배출하는 데 탁월합니다.
대표 프로그램 '시로드하라(Shirodhara)': 이마의 '제3의 눈'이라 불리는 부위에 따뜻한 약용 오일을 일정한 흐름으로 계속 떨어뜨리는 케랄라 전통 테라피입니다. 중추신경계를 깊이 안정시켜 주어 복잡한 잡념을 없애고 영적 묵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깊은 정신적 평화를 선물합니다.
순례 투어 맞춤형 힐링: 매일 걷고 이동하느라 지친 순례객들의 발과 다리의 피로를 풀어주는 하이드로테라피와 풀바디 마사지는 다음 여정을 위한 최고의 에너지를 충전해 줍니다.

도마가 인도에 도착한 것은 주후 52∼53년쯤으로 추정된다.
인도 서남부 케랄라의 무지리(Muziri)가 첫 기착지다. 거기서 도마는 복음을 전하며 세례를 베풀었다.
이후 동남부 마드라스로 이동했다. 도마의 영향력이 점차 확산되자 그를 향한 상류층과 힌두교 사제들의 질투와 미움이 극에 달했다.
위협을 느낀 도마가 피신한 곳이 첸나이 해변 인근의 리틀 마운트 성당 자리다. 도마는 이곳에서 기도에 전념했다고 한다.
성당 안내문에는
“도마가 기도하자 죽은 자가 살아나고 마귀가 쫓겨나고 한센병자가 낫고 맹인이 눈을 뜨고 병자들이 치유됐다. 기적은 지금도 일어난다”고 기록돼 있다.
도마가 기도했다는 동굴이 보존돼 있고,그가 남긴 손바닥과 발바닥 자국도 볼 수 있었다. 도마가 직접 새겼다는 십자가 자국도 남아있었다.
기도에 전념하던 도마는 결국 창에 찔려 순교한다.
그때가 72년이었다.

도마의 순교
도마의 선교로 복음이 활발히 전해졌고, 도마는 여러 지역을 돌며 복음을 전하였고
특히 제자를 세워 오늘날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제와, 부제를 세웠다.
도마의 선교사역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미스데우스’라고 하는 왕은
도마를 죽일 궁리를 하고 그를 재판에 세웠다.
.....
“나는 너를 죽이려고 서두르지 않고 자제해 왔다.
이제 나는 네 마술(복음)이 너와 함께 멸망하고
이 나라가 마술이 없이 깨끗하게 되도록 처리할 것이다.”
하고 왕이 말했다.
“네가 마술이라고 부르는 그러한 마술은
이 나라에서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라고 도마가 대답했다.
왕은 병사들에게 시켜 도마를 산으로 끌고가 죽이도록 명령하였고,
병사들은 도마를 끌고 산 위로 올라갔다.
이때 도마는 병사들에게 기도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고
다음과 같이 기도를 드렸다.
“나의 주님, 그리고 나의 하나님, 모든 땅의 희망, 구세주, 지도자, 인도자여.
당신을 섬기는 모든 이와 함께 계시고,
내가 당신께 가고 있으니 늘 나를 인도해 주십시오. …
주님 보십시오.
내가 당신 일을 완수하고 명령을 다 이행했습니다.
나는 노예가 되었으니 오늘 자유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완전히 자유를 주십시오….”
기도 후에 왕의 명령을 수행하라고 병사들에게 말하고
그는 오늘날 ‘도마 산’ 이라고 알려진 산에서 살해당하였다.
St. Thomas's final ministry and martyrdom sites.

도마는 주후 72년 첸나이에서 살해당해 마일라포르 라고 하는 지역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이 교회는 1504년 포르투갈인이 세웠고 1896년 재건축됐다.
성당 뒤편 지하 묘실예배당엔 그의 무덤 모형이 있다.
과거 이 지역에서 발견된 십자가 문양이나 비문, 성경 유물 등도 전시돼 있다.
이 성당은 로마의 ‘베드로성당’,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성야고보성당’과 함께 세계 3대 로마가톨릭교회 성지로 꼽힌다.

마하발리푸람 기념물군(Group of Monuments at Mahabalipuram)은 7, 8세기에 팔라바(Pallava) 왕조 때 건축한 힌두교 사원들이다.
이 사원들은 코로만델(Coromandel) 연안을 따라 바위를 파고 깎아서 만든 사원이다.
라타(ratha, 수레 모양의 사원)와 만다파(mandapa, 동굴 사원), 유명한 ‘갠지스 강의 하강(Descent of the Ganges)’으로 알려진 거대한 바위에 새긴 부조가 유명하다.
시바(Shiva)의 영광을 묘사한 수천 개의 조각상이 있는 해안 사원(temple of Rivage) 또한 이 지역의 야외 부조들로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저녁식사와 휴식
공항도착과 출국수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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